2019년 1월에 본 콘텐츠

카테고리: 경험담, 이번 달 본 콘텐츠

2019.1.7 영화 <로마> (5점 만점에 4.5점)
솔직히 초반 30분까지는 ‘이런 영화를 재밌다고 해야 영화를 좀 안다고 할 수 있는 건가. 그래서 나한테 사람들이 이 영화를 추천한 건가..’싶었다. 장면은 이쁘지만 흑백에, 진행은 느리고, 대사는 적고, 노래도 없다. 지루하대도 할 말 없는 영화다.
하지만 영화는 그 모든 장면을 충실히 쌓아올린다. 관객들은 그것이 무엇을 위함이었는지 곧 알게된다. 아니, 곧 느끼게 된다. 영화는 뭘 말해주지 않고 계속 보여주기만 하는데도 나는 계속 뭘 듣는 느낌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바로 전 장면과 같은 무게로 이어지는 장면에 마음이 울컥한다. 그게 참 묘하다.
진짜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오열했다. 혼자 간 영화관에서 그렇게나 울고 나니 조금 창피해졌지만, 곳곳에서 들리는 훌쩍임 덕분에 다시 한 번 떳떳하게 울고 나왔다.
생각해보니 <칠드런 오브 맨>과 <로마>를 같은 상영관에서 봤다. 그리고 비슷한 감상을 느꼈다. 진짜 이유도 모르는 사이 관객 울리기 대가인 듯.

2019.1.8 영화<질투는 나의 힘> (5점 만점에 3.5점)
젊은 박해일의 필모를 따라가다 만난 영화.
원상(박해일)은 미지근한 사랑의 열병을 앓는 청년같은 욕망과, 결국 연인을 내 품에 안겨주는 건 사회적 지위와 남성성이라고 믿는 아저씨같은 욕망을 동시에 보여준다.
   “누나, 편집장이랑 자지 마요. 꼭 누구랑 자야한다면 나랑 자요.”
청년과 아저씨. 애처럼 보채는 원상의 얼굴에 기득권을 향한 동경이 비친다. 원상의 질투는 애인을 두고 느끼는 질투가 아니다. 힘에 대한 질투다. 따라서 성연(배종옥)은 원상을 택하지만 원상은 그토록 원하던 성연을 거부하고 힘의 논리를 따른다.
그렇게 같은 선 위의 두 가지 상이 젊은 박해일의 얼굴에 공존한다. 박해일이라 가능한 연기다…

2019.1.13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 (5점 만점에 3점)
곧 개봉하는 3편을 극장에서 보려고 1,2편을 챙겨보는 중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인정받는 일은 언제나 좋다. 핸디캡이 사랑받을 수 있다면 더더욱 감동스럽다. 히컵은 맨손으로 용 때려잡는 바이킹은 못 되어도 부드러움과 친근함으로 용 사로잡는 바이킹이 되었다. 그런 히컵의 리더십은 처음에 천대받지만 결국 빛을 본다.
하지만 바이킹의 짱인 아버지의 인정이 사회의 인정이 되는 과정은, 별로였다. 아닌가.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모든 수단이 같은 (이상적) 목표를 그릴까? 아들의 말을 단 한 순간도 듣지 않던 아버지가 히컵이 사람들을 위기에서 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하나만으로 히컵을 인정하는 장면이 나는 조금 불편했다. 아닌가. 이건 풍자인가?
아무튼, 투스리스도 그렇고 다른 용용친구들도 그렇고 볼수록 고양이같다. 역시 귀여움과 매력도(특히 스토리텔링에서)에는 법칙이 있나보다.

2019.1.13 영화 <콘택트> (5점 만점에 3점)
늘 느끼지만 나는 너무 거대거대 우주우주 이상적이상적 인간은 미물 이런 이야기에 공감을 잘 못하는 것 같다. 설정은 완전 픽션이라도, 현실에 발을 꼭 붙인 인물들의 개인사가 좋다. 미물들끼리 미물미물 거리는게 더 좋다.
<콘택트>는 이런 내 취향의 중간지대를 잘 긁어준다. 영화 속 인물들은 주로 거대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각자의 입장이 가진 배경은 꽤 설득력있다. 신앙심, 권력과 신경전, 부모와의 애착관계, 철지난 사랑이 그렇다. 근데 이렇게 적고보니, 배경이 그럴싸한 만큼 뻔하기도 한 듯 싶다.
이상주의자가 세상을 바꾼다고 영화는 말한다. 이상주의는 단순한 신념이 아니라 신념을 동반한 행동이다. 그것도 괜찮겠는데?하고 한 번 끄덕이는 건 딱히 어렵지 않다. 마음 한 쪽 여유만으로도 가능하다. 정말 어려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을 ‘매일매일’ 추구하는 일이다. 불안함을 옆에 두고도 무언가를 꾸준히 바라는 마음, 그래서 계속되는 행동. 나는 주인공 엘리의 그 굴하지 않는 행동이 좋아서 영화의 거대거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꽤 공감하며 영화를 볼 수 있었다.

2019.1.16 책 <보건교사 안은영> (5점 만점에 3.5점)
1) 학교에서 2) 퇴마를 한다. 여기까지 말하면 응 여고괴담? 강풀의 타이밍? 이러기 쉽겠지만 여기에 3) 보건교사가 더해진다. 갑자기 여기서 보건교사가 왜 나오냐고? 읽어보면 안다. 보건교사라는 주인공의 직업이 옴니버스형 이야기에 아주 최적화되어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독특함이 가져다주는 분위기가 이 책을 어떻게 차별화하는지를 말이다. 청소년물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 전달 측면의) 장점과 퇴마라는 장르성, 그리고 보건교사 안은영 캐릭터가 가진 통통튐이 아주 좋은 조합을 만들어냈다.
모든 인물들이 생생X10 하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느꼈다. 주인공 안은영은 물론이고 한문선생 홍인표, 그리고 이 듀오 훑고 지나가는 모든 학생들과 어른들이 그렇다. 짧은 사건에 속해있는 아이들조차 자신만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역사를 바탕으로 한, 납득가능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욕망을 복잡하지 않은 방식으로 행동에 옮긴다. 그렇게 책 속 모든 인물들은 ‘아주 그럴듯하게 살아있다.’ 독자를 뿌듯하게 웃기면서 큭큭대게 만드는 특유의 분위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분위기의 뿌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색을 가진 캐릭터에게 있는 듯.
모든 에피소드가 충분히 재밌다. 하지만 책을 안전가옥에 두고 온 지금, 딱 하나의 이야기만 꼽아보라면 아 그거 진짜 좋았는데 싶은 건 또 잘 떠오르지 않는다. 모든 이야기가 비슷한 구도를 가지고 비슷한 무게로 다뤄진다. 다만 한 권의 이야기를 하나의 이야기로 보기에는, 그 안에서의 강약조절(혹은 기승전결)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책을 다 읽었다는 느낌이 덜 든다. 이야기가 아직 안 끝난 느낌이랄까. 근데 또 생각해보면 이게 이 책의 묘미인가, 모든 건 작가의 의도인가 싶기도 하고.

2019.1.25 책 <이것은 물이다> (5점 만점에 4.5점)
무엇을 어떻게 믿을지, 그걸 내가 선택할 수 있으며 그 사실을 내가 분명하게 아는 것. 이 맥락에서 무신론자는 없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어떤 것을 믿으며 살고있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기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외인성 경험에서 비롯한 두려움이나 불안에 져버리고 허둥지둥 믿을 것 앞에 내몰리며 사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쉽게 억울해지지만, 달리 방도를 알 수 없어 무기력했다. 나는 내가 물고기라는 사실이 중요한 만큼 내가 사는 곳이 물이라는 걸 잘 아는 채로 살고 싶다. 주위에 것을 명징하게 혹은 명징하지 못하더라도 내 의지에 따라 인지하고 정의하고 애정하며 살고 싶다.

 

경험담 인스타그램 @lookaroundthe.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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