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안전가옥 겨울 스토리 공모전 원고 마감이 있은 후, 어김없이 1월엔 심사를 치뤘다. 심사 중 모든 심사단 운영멤버들이 입을 모아 칭찬한 작품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심사내내 어서 그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하지만 작품을 읽고 난 후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딱히 작품의 매력이나 재미포인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그 작품에서 특별한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최종 결심 회의에서 다른 운영멤버들에게 나는 솔직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모르겠다’고. 사람들은 어떤 걸 모르겠는지, 구체적인 생각과 근거를 물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게 무엇인지 조차 모르겠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다른 분들은 이 작품의 어떤 점이 좋다고 느꼈는지 물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느낀 그 작품의 매력들을 알려줬다. 그 근거들을 찬찬히 들으면서 나는 왜 내가 그들과 같은 것을 느끼지 못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고, 내가 모르던 것의 형체를 조금씩 구체화하며 납득가능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속시원한 토론과 의심할 여지 없는 결론에도 불구하고, 심사가 끝나고 며칠간 약간의 답답함이 이어졌다. 우선 내가 맡은 역할이 어느 만큼을 ‘알기’를 기대받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만큼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갈 길이 늘 멀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진짜 앞으로 한참이구나 싶어 아득했다. 하지만 내가 ‘모른다’는 사실 그 자체에 아쉬움을 느낀 건 아니었다. 아쉬움이 기대에 반비례하는 감정이라면, 누군가가 앎에 있어 완벽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나는 믿고, 그건 나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믿음이므로. 형평성을 위해, 그리고 좋은 작품/작가를 찾는다는 목적에 봉사하기 위해 심사위원단을 여럿으로 구성한 것 또한 마찬가지 이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모르겠다는 말을 하는 나의 방식이 최선이었는지 의아했고, 잘 모르겠는 것에 대한 나의 의견을 전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나는 늘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는 일’을 위험하다고 생각해왔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의견을 말해야 할 땐 말을 아주 아끼거나, 길고 긴 사족을 앞세우거나, 가장 많은 경우엔 그저 모르는 것에 대해 질문하는 편이다. 확언은 그 말에 따르는 책임을 어깨에 지기로 하는 결정과 같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믿음을 넘어, 그 믿음을 누군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기로 한다면 더욱 그렇다. 누군가는 그것에 섣불리 판단당했다고 느낄지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미지의 대상이 꼭 외부의 것에 한정되는 것을 아닐테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해 확언하며 산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이래야 해- 저래야 해- 가끔 ‘물론 나도 변할 수 있지’ 하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귀인을 만날 때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말 그대로 귀인이라 드물다. 겸손은 위장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조심스러운 척해도, 자기 기준에 의심의 여지를 두지 않는 사람들은 함부로 남을 판단하고는 한다.

우리는 말과 행동이 달라 결국 웃음거리가 되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 믿음에 배반당해 상처받고 속이 쓰린 사람들도 알고 있다. 섣부른 확언의 빈속은 들통나기가 쉽다. 의도한 거짓이 아니더라도, 아무리 견고하다 믿었던 신념이라도, 손바닥 뒤집듯 거짓이 되기가 쉽다. 그런데도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확신을 가진다면, 그 확신의 강도와 결국 드러난 진실 사이의 낙차는 많이 아프다. 누군가는 ‘사람들은 너의 말에 그렇게 의미부여하면서 살지 않아’라고 코웃음 칠지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의 자의식이 강한지 아닌지 하는 사실보다 더욱 분명한 건 이 세상은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점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법이니까. 새도 쥐도 나름의 생각을 하면서 사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나는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사람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서도 그렇다고 언제나 함구할 수는 없는 노릇. 우리는 언제나 의견을 말해야 한다. 내 생각을, 나에 대한 내 생각을, 남에 대한 내 생각을 발화해야하고 발화하게 된다. 발화에 대해 정당한 곳, 충분히 발화하기를 요구받는 곳이 좋은 환경이라 믿는다. 사람들은 직감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친구의 말에 공감하기에, 과감히 평가하는 말도 때로는 불쾌하기보다 큰 도움이 되는 때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내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면 좋을지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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