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에 본 콘텐츠

카테고리: 경험담, 이번 달 본 콘텐츠

2019.1.31-2019.2.3 드라마 <킹덤> (5점 만점에 3.5점)

주변에서 하도 기대하지 말라길래 정말 기대를 안 했더니 생각보다 재밌었다. 또 배두나가 몰입에 방해될 정도로 연기를 못한다길래 얼마나 못하나 기대했는데 나는 전혀 어색한 걸 못 느끼겠어서 의아할 정도였다. 내가 배두나 연기에 익숙해진건가 음?

일단 서사도 갈등구조도 참 단순하다. 그래서 그런지 좀 더 휘몰아쳤음 좋겠는데 싶어 아쉬운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그래서 쉽다. 쉬워서 좀비에 집중이 잘 된다..ㅎ 또 좀비가 등장하는 씬이나 전투씬, 좀비가지고 인간들이 옥식각신하는 씬, 인간들이 좀비 피해서 오들오들 떠는 씬, 좀비가 인간 뜯어먹는 씬이 생각보다 다채로워서 장르적으로 아주 보는 재미가 있다.

허준호가 연기한 대감 캐릭터, 진짜 우직하니 멋있었다는 티엠아이. 그리고 지하철에서 좀비 나오는 거 보다가 나도 모르게 오!하고 소리내서 민망했던 건 안 비밀..ㅠㅡㅜ

2019.2.4 영화 <극한직업> (5점 만점에 4점)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소젖짜는 류승룡을 보고 이게 왜 이렇게 재밌지… 하며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그 코믹연기는 어떤 하나의 조합같았다. 표정 때문도, 말투 때문도, 이미지 때문도 아닌. 그냥 잘 어울어진 하나의 조합. 그래서 따지기가 어려웠다.

내 코드가 류승룡식 개그와 맞아서 그런지 <극한직업> 진짜 너무 재밌었다. 흥행은 흥행대로 하고 있지만 주위에서 평이 살짝 갈리길래 궁금했는데, 나는 완전 당해버렸다. 일단 중간중간 인위적인 비급연출도 너무 좋았고 종잡을 수 없게 흐르면서도 중간중간 전형적으로 갈무리해주는 게 좋았고 개그 떡밥 수거하면서 쳤던 거 계속 치는 것도 좋았다. 으으 다시 생각해도 좋아..

뭣보다 좋았던 건 메타개그. 주변에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게 제일 재밌었냐고 꼭 물어봤는데 거의 공통적으로 나온 답변이 ‘이것은 갈비인가 치킨인가..’였다. 배달의 민족 대표 모델이었던 류승룡이 치킨 주문받는 건 작품 밖에서 쌓인 관객과의 공감대를 가져다 쓴 좋은 예다. 영화를 볼 쯤엔 육백만이었는데 이제 천만은 거뜬히 넘어버린 영화가 된 걸 보면, 요런 코드들이 대중 저격에도 제대로 성공한 듯 싶다. 그리고 그게 참 신기하다.

2019.1.15-2019.2.24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5점 만점에 4.5점)

스스로를 오랜 시간 갈고 닦은 느낌을 물씬 내는 작가. 그런데 그 갈고 닦음이, 뭔가를 억누르고 참으며 이루어지는 수양같은 것이 아니라, 응당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복된 습관처럼 보인다. 이처럼 모든 글과 생각의 바닥에 ‘옳음’에 대한 작가의 기준이 놓여있어서 비판, 분노, 포용, 조언이 모두 가능해진다.

그 옳음이 고집스러울만큼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 그게 작가의 생각에 완전히 동의하지 못해도 그를 무한히 긍정할 수 있는 지점이 된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함’을 옳음의 기준 중 하나로 두고 그것을 고집스럽게 보여준다. 고집없는 고집이라니, 너무 닮고 싶었다.

응당 그렇게 생각하고 믿는다 해도 믿음과 행동 사이에는 늘 괴리가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책에 더 호감이 간다. 얼마나 갈고 닦았으면, 그 시간동안 스스로 벌인 사투가 얼마나 불꽃튀었으면, 지금 이리 확고할 수 있는걸까. 그 시간과 고민을 존중하는 만큼 나는 이 책이 좋고, 이 책을 좋아하는 만큼 나의 지난한 시간과 지난할 시간에 대한 존중이 간절하다.

2019.2.10-2019.2.25 넷플릭스 시리즈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시즌1 (5점 만점에 3.5점)

건강하다는 느낌을 가득 안겨주는 시리즈. 주된 내용은 <성 경험 없는 고등학생 오티스가 성 문제 전문 상담가 엄마의 서당개로 지내며 배운 지식으로 각종 문제를 겪는 친구들을 카운슬링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오티스의 상담은 도구적으로 쓰인다. 오티스와 (그의 짱친)에릭 사이의 갈등을 만드는, 오티스와 매브가 애매한 감정선을 이어가는, 오티스가 깨달음을 얻고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게 하는, 혹은 이야기 전반에 조미료를 치는 재미요소로.

그렇기 때문에 이 시리즈의 본질은 성장물이고, 그 성장의 과정은 어른스러우리 만큼 건강하다. (요즘엔 어른이라고 건강한 것이 아님을 나만의 정설로 삼고 있지만..)자기 문제에 빠져 허우적 거리다가 언젠가 큰 결단을 내리고마는 여느 콘텐츠 속 청소년들과 달리, 이 시리즈의 아이들을 자기 자신을 객관화할 줄 안다. 그렇기에 친구와의 문제를 꼭 서로 죽자살자 싸우며 해결할 필요가 없고, 가족과의 시간이나 우연히 길에서 만난 사람과의 대화면 적당하다. 자신이 겪는 문제에 머리 싸매며 괴로워 할 필요가 없고, 자연스레 때가 되었을 때 부모 혹은 친구와 나누면 그만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르짖는 ‘메타인지’를 이 아이들은 자연히 탑재하고 있다. 음.. 많은 사람들이 메타인지를 원한다는 맥락에서 이 시리즈가 현실적인 것인지 오히려 비현실적인 것인지 판단은 잘 서지 않지만. 그래도 ‘내 문제를 다루는 좋은 태도’를 8시간 쯤 내리 보면서, 나한테도 그런 태도가 좀 물들었으면 하고 나는 바랐다. 어디선가 ‘요즘 사람들은 심각한 콘텐츠를 점점 원하지 않게 되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세상에 나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그런건가 싶기도 했다.

2019.2.6 넷플릭스 영화 <버드박스> (5점 만점에 3.5점)

설정은 본격적이고, 설명은 효율적이다.

논리적 혹은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두려움의 대상 ‘그것’이 극 초반부터 바로 제시되는데, 그 전개속도가 아주 빠르고 본격적이다. 동시에 ‘그것’을 피해 한 집에 모인 생존자들은 서로 생 초면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들이 가진 역학관계는 없다. 하지만 이런 본격적인 상황 세팅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이해에 어려움을 겪을 필요가 없다. 효율적인 방식으로 이 모든 것들이 설명(표현)되기 때문.

주인공 멜라니는 바로 눈 앞에서 ‘그것’ 때문에 자살하는 동생을 본다. 이로써 관객이 인지하는 공포의 대상은 단박에 명확해진다. + 멜라니는 자신을 구하려다 죽은 여자의 아버지 집에서 다른 생존자들과 머무르게 된다. 이로써 갈등 관계가 쉽게 납득된다. 이런 식으로 이 영화는 사람 몇 명 죽여서 핵심 관계/설정에 대한 설명을 끝내버리는 쿨함을 보여준다. + 게다가 멜라니는 만삭의 임산부. 그 덕에 인물들이 보호하고자 하는 대상은 아주 명확해진다. 더불어 현재와 과거가 번갈아 보여지는 교차연출 속에서도 관객들은 시간대를 헷갈리지 않을 수 있다.(아이의 성장 수준을 보면 되기 때문) + 그 밖의 여러 클리셰(아시안이 기계를 잘 알거나, 겁많은 덕후 캐릭터가 각종 문화권에 등장하는 악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등)도 적절히 보인다.

주인공이 좀 고집있는 캐릭터라서 잘 안 변할 것 같은데, 적절한 타이밍에 행동 변화의 동기를 부여받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급박한 재난 상황에서 주인공은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을 내리고 그렇게 변화는 만들어진다. 다른 선택지가 별로 없는 상황이라서 그런 선택들이 고집스러운 주인공 캐릭터에 반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멜라니는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 역시 단호한 고집으로 밀어부친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순간들이 쌓여서 멜라니는 능동적인 변화의 선택을 내릴 수 있게 된다. 그때 만들어지는 감동이 참 신기했다. 주인공의 고집스러움이 단호한만큼 그가 겪는 변화가 감동스럽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해야하나…

2019.2.8-2019.2.10 넷플릭스 시리즈 <러시아 인형처럼> (5점 만점에 3.5점)

자신의 생일날 갑작스레 죽게 된 나디아. 어찌된 영문인지 그는 몇 번이고 죽음을 반복한다. 장르는 영락없는 타임루프. 하지만 반복되는 하루의 비밀을 파헤친다는 점에서 미스터리물이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나디아가 내적 성장을 거친다는 점에서는 성장물이기도 하다.

나디아와 함께 타임루프를 겪는 알란이 등장하지만 이 남성 캐릭터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이다. 만약 타임루프라는 상황을 풀어야하는 미스터리라고 볼 수 있다면, 나디아는 그 삶이 미스터리이자,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클루이자, 나디아 자신이 그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탐정 역할을 하기 때문. 미스터리 해결 과정에 주효한 것들은 모두 나디아의 주체적인 선택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임루프를 통해 치유받는 것 역시 나디아가 된다. 그래서 극을 다 보고나면 이런 해프닝(?)이 일어난 것은 나디아를 위한 것이 아닐까 싶어지고, 이 모든 것이 환상이었다면 나디아의 꿈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여성인 주인공이 성장 서사와 미스터리 서사를 굳건히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참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 실제로 작가진과 감독, 제작이 모두 여성이고 나디아 역의 나타샤 리온이 제작에 참여. 나타샤 리온은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시리즈에 이어 너무 매력적으로 그려졌다. 진짜 그 머리랑 목소리랑 아이라인은 박제가 절실한 듯..

 

경험담 인스타그램 @lookaroundthe.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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