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독일 여행 : 더 가까운 거리에 숭고함

카테고리: 경험담, 에세이

* 커버 이미지는 마르세유 굿마마 아래서 바라본 노을

보름간의 여행, 두 개의 국가, 여섯 개의 도시, 귀국 후 일주일의 휴식. 그렇게 거의 한 달을 쉬고 업무에 복귀했다. 나의 긴 휴가에 대해 알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같은 질문을 했다. ‘여행 어땠어요?’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질문만큼 그들의 표정 역시 기대감으로 가득한 것이 비슷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좋긴 했는데, 제가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요. 그래도 좋기는 진짜 좋았는데..’하며 말 끝을 흐렸다. 나의 소감이 상대방의 기대를 약간은 져버리는게 아닐까 하는 우려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보낸 시간이 여행이라서 혹은 관광이라서 좋았다고 말하기엔, 전달에 부족함이 있었다.

서로 다른 이유로 여행을 좋아하더라도 사람들이 휴가를 기다리는 마음은 비슷하다. 하지만 만약 여행을 일탈의 수단으로만 본다면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는 일상의 모든 일들은 견뎌내야하는 무언가로 전락한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숭고한 풍경은 우리를 우리의 못남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익숙한 못남을 새롭고 좀 더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해준다. 이것이야말로 숭고한 풍경이 가지는 매력의 핵심이다.” 비싼 돈을 주고 여행이라는 비일상의 시간을 구매하면서 일상의 못남에 대한 깨달음을 덤으로 떠안게 되면 너무 아쉽다. 그리고 이런 효용만이 여행의 전부가 아니기에,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여행을 계획하는 것일테다. 

니스 노을

나에게 있어 이번 여행은 ‘숭고한 풍경을 통해 일상을 재정의하는 작업’에 가까웠다. 나는 여행내내 작년 1월 안전가옥에서 살롱을 진행했던 <영향력> 은미향 편집자의 말을 곱씹었다. 그는 매거진을 만들기 시작한 이후 출근하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수익이 충분히 나지 않는 잡지 제작을 위해서 낮에는 글 쓰는 것과 무관한 회사에 나가 일을 하고 밤에는 원고를 들여다보며 살다보니 역설적으로 자신이 왜 회사에 다녀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나는 마르세유의 엄청난 노을을 보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난생 처음 먹는 음식을 오물거리면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의 안위를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 그의 말을 다시금 이해했다.

그 풍경들은 여기를 벗어난 거기라서, 전에 해본 적 없는 경험이어서, 혹은 내가 오래도록 기다려온 순간이라서 숭고한 것이 아니다. 비일상의 숭고함은 그에 상대되는 못난이 일상이 존재하기에, 즉 일상이 비일상을 지탱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일상 또한 함께 숭고해진다. 보통이 이야기하는, 숭고한 풍경을 통해 결국 다시 되돌아가야할 일상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작업은 이렇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은미향 편집자가 그때 느낀 것을 내가 뒤늦게 반복하며 따라가고 있다고 짐작하게 되었다.

뮌헨 잉글리쉬 파크 서퍼들

그렇기에 숭고한 풍경이 꼭 여행에서 만나는 장관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동료의 반짝이는 눈빛에서, 집 앞 코인 세탁방에서 이불 빨래가 다 되길 기다리며 노닥거리는 시간에서, 밀린 드라마를 몰아보다 늦잠을 자는 아침시간에서 역시 나는 숭고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시간들에 상대되는, 반복되는 일상의 숭고함을 함께 알아간다. ‘이 맛에 돈 벌지!’하는 것 그 이상으로, 나는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면서도 여전히 여행하는 느낌으로 남을 수 있다. 나에게는 이 일상의 숭고함이 떠나고 싶지 않을 만큼 소중하다. 나는 손 닿는 가까운 거리에 다채로운 숭고함을 꾸준히 만들면서 늙어가고 싶다.

 

경험담 인스타그램 @lookaroundthe.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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