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에 본 콘텐츠

카테고리: 경험담, 이번 달 본 콘텐츠

* 커버 이미지는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한 장면

2019.3.4 영화 <밀양> (5점 만점에 4.5점)

이창동 감독의 영화 중 내가 처음 본 것은 그의 입봉작 <초록 물고기>였다. 20년이 더 된 영화라 화면은 낡고 화장은 촌스럽고 배경은 낯설었다. 그런데도 마지막 장면을 보고 마음이 마구마구 찡해졌던 기억이 난다. 막 제대한 막동이가 우연히 사랑에 빠지고, 우연히 조폭 세계에 발을 들이고, 그런 우연이 쌓이고 쌓이다가 어느 순간 치명적인 변화로 이야기가 결론지어질 때. 그 ‘가랑비에 옷 젖듯’ 하는 고요함과 결과의 돌이킬 수 없음 사이의 간격만큼 나는 찡했다.

그리고 <밀양>을 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껏 앞 부분만 보다말다 하던 영화였는데, 막상 20분이 넘어가니 그때 그 ‘가랑비에 옷 젖듯’하는 느낌이 되살아났다. 논리적으로 이해하긴 어렵지만 저럴 수 있지 싶은, 신애의 행동들이 쌓이고 쌓이더니 결국 아이가 유괴당했다. 적어도 신애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래서 그는 종교에 기대게 되었지만 자신의 아들을 유괴하고 살해한 범인을 용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을 품어준 하느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결국 범인을 용서하기로 마음먹고 그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신애는 ‘저는 하느님에게 용서받았습니다. 하느님은 참 감사한 분입니다.’라는 말이 범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듣는다.

마음이 찡해지는 건 그 다음부터다. 신애는 여전히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전처럼 신을 전적으로 모시지도 못한다. 그래서 그는 하늘을 보며 보란듯이 도둑질을 하고 불륜을 시도한다. ‘보란듯이’ 하는 행동에는 대상이 있다. 신애의 상대는 하느님이다. 그는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벼랑끝에서 미쳐버린다. 결국 가랑비에 옷 젖은 줄 모르고 걷다가 어느순간 집에서 너무 와버렸음을 깨달은, 막동이와 신애는 참 닮았다. 그들이 지나온 그래프의 기울기는 격하지 않지만 출발점과 도착점의 격차는 너무 크다. 둘이 맞이한 변화는 결코 돌이킬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으로 이창동 감독의 <시>를 보고 <버닝>을 봐야겠다. 그러고나서 <오아시스>와 <박하사탕>을 봐야겠다.

2019.3.2-2019.3.12 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 (5점 만점에 4.5점)

잘 쓴 글을 읽는 것은 언제나 신나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 한 권을 읽는 내내 아주 신이 났다. 곱씹을 부분도, 읽다 멈춰서게 되는 부분도 많았고 끝나는 것이 아쉬워 지나온 곳을 반복해 읽기도 했다.

무엇보다 신형철이 콘텐츠를, 세상을 읽어내는 태도가 나는 좋다. 속단하거나 자만하지 않고, 세상에서 더 없이 신중하면서도 자신이 그런 줄도 모르고 꾸준히 신중하려 노력하는. 어떤 사람이 이런 태도로 스무 편 넘는 영화를 보고서 쓴 글을 담은 책을 읽다보면 (그 해석의 정확함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로) 세상이 아주 살만한 곳처럼 느껴진다.

책 제목이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다. 작품을 정확하게 사랑하는 방법은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이며, 자신이 그럴 수 있는 사람인지, 혹은 무엇이 정확한 해석인지 끊임없이 실험하는 것. 작가는 이것을 ‘평론’이라는 업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업에 대한 명확한 상을 그릴 줄 아는 것이, 사실 나는 제일 부러웠다.

2019.3.29 영화 <겟아웃> (5점 만점에 4점)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너무 늦게 본 영화. 스포를 당한 기억은 없는데, 이 영화를 언급하는 대화에 끼어있던 적이 너무 많았던지라 자연스럽게 스포에 노출됐었나 보다.. (영화를 안봤으니 들어도 스포인지 아닌지 몰랐던거 같다 헤헤..) 그래서 그런지 딱히 반전이 있다고 느끼진 못했다. 그게 조금 아쉽다. 역시 재밌다는 영화는 빨리 봐야..

제한된 공간에서 풀어내는 이야기가 길을 잃지 않고 정확히 목표했던 곳에 도달하는 느낌. 어떤 영화는 다 보고나면, 다른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하고 궁금해지는데 <겟아웃>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더라. 메시지가 명확하고 영화가 그걸 제대로 전달하기 때문일 거다. 아마 대부분의 관객들이 내가 느낀 그 느낌과 (정도의 차이 외에)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그래서 살짝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2019.3.30 영화 <어스> (5점 만점에 3.5점)

Us는 ‘우리’와 ‘미국’을 중의적으로 담은 제목이라는데, 그렇다면 이 영화는 미국적인 문제의식을 담고 있나? 잘 모르겠다. 상징으로 보이지만 뭘 상징하는 건지 쉽게 인지할 수도/느낄 수도 없던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보는 내내 궁금한 건 많았지만 끝내 공감은 되지 않는 영화였다. 나 너무 한국인이라 구론가..

무엇보다 결국에 설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쉽다. 근데 생각해보면 <겟아웃>도 그랬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인물이 놓이는 상황이 아주 충격적임과 동시에 평면적이라는 것. 그래서 더더더 파격적인 사건이나 장면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 그 대신 논리와 메시지로 설정의 충격을 구체화하고, 이로써 충격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듯 보인다.

살짝 교조적인 느낌은 없지 않았어도 <겟아웃>의 문제의식은 다르게라도 공감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전반적인 균형감이 매우 좋았다. 근데 <어스>는 살짝 이도저도 아닌 느낌…? 문제의식을 얻어가기엔 많은 것이 너무 추상 레벨에 가깝고, 그렇다고 무서움을 느끼기엔 설정에 논리를 부여하는데 좀 집착하는 듯한. 근데 또, 웃기기는 <겟아웃>보다 <어스>가 훨씬 웃겼다..호호

2019.3.31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5점 만점에 4.5점)

세상에 이런 영화 10개만 더 있으면 이번 주말엔 뭐 보지 하는 고민은 당분간 안 해도 될 텐데. 이 영화와 비슷한 코미디물 알고 계시면 제발.. 제발 추천 좀 해주세요… 왓챠플레이에 업데이트 되었다길래 무심코 보기 시작한 영화였는데, 진짜 덕분에 정말 실컷 웃었다…ㅎㅎㅎ

크게 1부 2부로 구성되어 있는 영화. B급 느낌의 좀비 영화가 나오다가 어느 순간 ‘내가 이걸 왜 보고 있지?’ 하는 느낌이 스멀스멀 들 쯤이 되면 2부로 넘어간다. 그리고 2부는 1부의 영화가 만들어진 자초지종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맞아떨어지는 조각들의 희열이, 그 코미디가 너무 좋다. 아주 새롭다기엔 살짝 애매한 구성이지만 이 구성을 이렇게 해내기로 한 결정은 정말 대담하고 정말 멋지다.

사실 2부를 반쯤 보다 보면 ‘아 이래서이래서 그랬나보네’하고 감은 오지만 다 예상하고서도 눈으로 보면 또 웃기다. 진짜 정곡을 찌르는 코미디가 이런 건가? 웃긴 농담은 집에 와서 혼자 생각해도 다시금 웃긴 것처럼, 예상되는 전개였으나 직접 봤을 때 더 웃기다면 그게 진짜 웃긴 거지.

찾아보다 보니 이 영화에 모든 배우들이 무급으로 출연했다고 한다. 무슨 아카데미?같은 걸 같이 들은 사람들끼리 졸업작품처럼 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애초에 있던 시나리오에 팀이 붙은 것이 아니라, 각 배우의 실제 성격이나 특성을 고려하면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고. 인상적인 기획이지만 무급이라니 그건 또 좀…

 

경험담 인스타그램 @lookaroundthe.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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