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글빙글 도는 고민의 종착점은

카테고리: 경험담, 에세이, 잘 살고 싶어서 한 생각

Q. 이대로 괜찮은가?

나는 이 질문 앞에서 쉽게 작아지는 편이다. 자존감 문제인지 인지부조화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이 질문은 매번 다른 문장으로 머리에 떠오르곤 한다. 뭔가 부족해서 변화를 원할 때도, 모든 것이 완벽히 충족되어서 변화가 필요없을 것 같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대로 괜찮을까?> 혹은 <이대로 괜찮을 것 같은데 정말 그럴까?> 결국 같은 이야기다.

사실 애초에 문제를 드러내기 위한 질문 아닌가. 그러니 이 질문에 유쾌해질리가 없다. 답답했다. 괜찮다고 생각하면 거짓말같아서 짜증이 났고, 괜찮지 않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사는게 억울해서 짜증이 났다. 생각하기 싫은데도 일정 주기로 비슷한 질문에 사로잡히는 스스로를 보면서 이 정도면 변태 아닌가 싶었을 정도였다. 빙글빙글 도는 질문의 종착점은 어딜까.

A. 이대로는 안되겠다.

빙글돌아 여전히 제자리라면, 그만큼 억울한게 없겠다 싶었다. 나에게 어떤 자구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어느 날 부터 나는 적기 시작했다. 어차피 고민은 매번 다른 언어로 반복될 뿐 본질은 비슷했다. 그래서 고민말고 고민의 결론을 적기 시작했다. <나는 소중한 사람들과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행복할 수 있다>, <도전적이지 않은 선택은 아무리 흥미로워도 지루하다>, <꾸준히 쌓을 수 있는 프로젝트 하나쯤이 체질에 맞다> 이런 문장들이 메모장에 늘어갔다.

나는 그걸 구분하고, 수정하고, 추가하고, 필요하면 덜어내면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이폰 스크린타임 순위에서 ‘메모장’ 이용시간이 카카오톡 다음으로 긴 것은, 내가 내 마음을 잘 다스리고 있다는 사실과 그럴 필요가 꽤 자주 생긴다는 사실을 동시에 보여준다. 문장들이 꽤 많이 쌓이고 메모 폴더들이 정돈되어 갈 쯤, 나는 내가 하는 고민들의 규칙, 패턴, 주기를 발견했다. 모르던 것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불안’이었다면, 내가 아는 것에 대한 것은 ‘생각’일 뿐이었다.

A. 이대로 괜찮은지 궁금하다면 4번 파일을 보시오.

요즘도 나는 빙글빙글 도는 고민이 부정적으로 흘러갈 것 같은 느낌이 들때 지난 메모들을 정독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주로 읽는 메모들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1. 2019 목표 2. 고은비를 행복하게 하는 상황의 성격 3. 고은비의 능력치와 근거 경험 4. 고은비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일의 조건. 지난 4월엔 유독 4번을 많이 열어봤다. 불만족과 만족이 너무 공존하는 바람에 헷갈리는 것들이 많았고, 그만큼 정리가 간절한 중요한 시기였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은, ‘과거의 나’를 믿는 것에서부터 가능한 일이다. 순간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 ‘과거의 나라면 이 중요한 것을 아무데나 내버려두지 않았을 거야. 분명 어딘가에 고이 모셔져 있을 거야.’ 하고 먼저 안심하는 것과 같다. 치열하게 고민한 과거의 나를 믿고 지난 고민은 반복하지 않겠다, 그런 믿음. 내가 만든 근거들에 기반해 더 나은 선택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

요즘 유독 다음을 계획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는, 솔직히 조금 불안하다. 하지만 괜찮다. 그때마다 열어볼 메모가 있고, 무엇보다 그 메모를 작성하며 골몰하고 애썼던 시간들이 나에겐 있으니까.

 

경험담 인스타그램 @lookaroundthe.site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