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이성’의 힘을 믿는 편입니다. 사실 감정과 이성이 서로 대치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 둘을 명확하게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래도, 결정적인 순간에 제가 발휘해야하는 것은 감정적인 반응이 아니라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해요. 저를 지금껏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 역시 그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 시간의 총합이라고 믿고 있고요. 

고민이 생기면, 저는 과하게 재고 따지기를 반복하곤 합니다. 목표를 점검하고, 제가 가진 자원과 근거를 정리하고, 상황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기준을 정비하거나 새롭게 세우고, 모든 걸 그에 따라 다시 한 번 검토합니다. 누구보다 ‘객관적’이기 위해 노력해요. 하지만 그렇게 이것 저것 따져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사실 삶에 있어서는 그런 질문들이 늘 대부분이었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제 이성이 고개를 듭니다. 더, 더. 더 고민해보자고. 늘 그래왔듯 그렇게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으니까요.

‘지친 거 아니에요?’

이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제가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걸 깨달아버렸습니다. 이 마저도 제가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변수라고 생각해버린 건 크나 큰 함정이지만, 네. 인정하고 나니 많은 문제들이 스르르 해결되어 버리더라고요. 지쳤던 것 같아요. 지친 건 아닌지, 어떤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닌지 하는 질문을 들었을 때 제 속에서 뭔가 덜컥하고 멈추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걸 재고 따지면서도 저는 왜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볼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었던 걸까요? 내 삶을 오롯이 제가 컨트롤할 수 없다는 어린 생각과, 내 삶의 주인은 나인 만큼 나를 돌봐야 하는 것도 나라는 깨달음 사이에서 저는 약간의 좌절감 마저 느껴버렸습니다.

요즘엔 무언가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만 바라보는 저의 태도를 돌아보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업무와 과제에는 그런 태도가 자주 도움이 되었지만, 제 삶을 두고도 그런 태도를 보인다면 그건 오만이고 자만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끝끝내 알 수 없는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제 삶 전체를 좌절감으로 채우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도 하고요. 몇 걸음 나아가게 만드는 것은 내 이성일지 모르겠지만 나아갈 방향을 크게 변화시키는 것은 저의 감정 내지 직감일 수 있고, 결국 제가 그려온 그래프의 변곡점에는 말로 설명하기엔 너무 응축되어있는 저의 감정이 자리잡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함께요. 

요즘 저는 저만의 변화를 준비하는 중입니다. 그 과정에서 꽤나 골머리도 앓았지만요, 그런 저의 상태를 알아봐주고 말 걸어준, 그리고 저의 지난한 대화를 모두 들어주고 자신만의 의견을 더해준 사람들이 있었어요. 돌아보면 저의 변곡점 위에 서 있는 건 저 혼자만이 아니었는데. 저를 지금껏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시간들이 제 힘만으로 가능했던 건 절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마저 다시금 깨달으면서 또 한 번 좌절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저는 저를 진단하는 것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솔직히 이렇게 백이십세 세상 어떻게 건강히 버티나 싶은 마음이 크지만, 앞으로도 열심히 헤맬거에요. 그러다보면 언젠가 머리로 설명할 순 없지만 마음이 먼저 동하는 순간을 다시금 만나게되겠죠?

 

동그라미 인스타그램 @lookaroundthe.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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