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강해지신 것 같아요

카테고리: 동그라미, 에세이, 일 하는 마음

‘뭔가 강해지신 것 같아요.”

안전가옥에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쯤, 몇 년만에 만난 분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이 말을 듣고 저는 ‘파!’하고 최불암 웃음을 터트려버렸는데요. 우선 ‘강하다’라는 말을 들은 것이 난생 처음이었고, 그 말은 게임 캐릭터에나 어울리는 형용사 같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하지만 무엇보다 당황스러움이 컸던 것 같아요. 내가 강한 사람이라니. 늘 한결같이 쫄보인줄 알았는데.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자리에 앉은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듣게 된 ‘강해졌다’는 말이 저를 아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랩업은 저에게 먼 이야기 같았거든요. 

그날 집에 돌아오면서 되짚어보았습니다. 지난 몇 년간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이에요. 돌아보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더라고요. 연극을 통해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기도 했고, 인생 첫 인턴으로 출근하며 임원 앞에서 겁없이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했어요. 게임을 출시해서 글로벌리 칭찬과 욕을 동시에 먹기도 했고, 대학 졸업 논문으로 큰 칭찬을 듣기도 했죠. 그 과정에서 제가 원하는 선택을 내리기 위해 저는 참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야했습니다. 물론 그중 가장 힘들었던 건, 제 자신을 설득하는 일이었지만요.

“2년 전 쏠과 지금의 쏠은 전혀 다른 사람 같아요.”

지난 면담에서 뤽에게 이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순간 의아했지만 곧 알 수 있었습니다. 아, 나 또 내가 모르는 새 엄청난 시간을 보내고 있었구나, 하고요. 생각해보면 참 당연한 이야기였을까요. 처음 ‘쏠’이라는 닉네임을 만들었을 당시의 저는 비지니스 이메일 예절따위 엿바꿔먹은 사회초년생이었고 작가님들과 어떤 대화를 나눠야할지 초조해하는 병아리같은 직원이었으니까요. 

‘모든 이야기들의 안식처’라 자칭하는 이곳에서 그간 참 안전하게 헤맸습니다. 초기멤버라는 이유 하나로 안전가옥의 유아기를 지켜볼 수 있어 즐거웠고, 아이디어부터 회고까지 몇 번의 사이클을 돌면서 많은 것이 점점 자연스러워졌어요. 작가님들과 행사를 진행하며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느꼈고, 제가 기획한 프로젝트에서 탄생하는 이야기들을 읽을 땐 마음이 참 벅찼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게 없었고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특별히 더 쉬워진 것도 없는 것 같았는데. 그런데도 그 새 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네요.

퇴사를 코앞에 두니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수집할수록 중독되는 성장의 순간들 덕분에 저는 지금 아주 충만합니다. 안전가옥에서 제가 뭘 잘 하는지, 잘 하고 싶은지 알게 되었고 그 근거도 열심히 수집했어요. 뭐, 이것도 언젠가 뒤바뀔 생각일지 모르고 어쩌면 그 뒤바뀜의 순간을 향해 당당히 걸어갈 뿐이겠지만. 그래도 그 고되었던 시간만큼은 너무나도 진짜였기에 저는 당분간은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그라미 인스타그램 @lookaroundthe.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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