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이대로 괜찮은가? 나는 이 질문 앞에서 쉽게 작아지는 편이다. 자존감 문제인지 인지부조화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이 질문은 매번 다른 문장으로 머리에 떠오르곤 한다. 뭔가 부족해서 변화를 원할 때도, 모든 것이 완벽히 충족되어서 변화가 필요없을 것 같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대로 괜찮을까?> 혹은 <이대로 괜찮을 것 같은데 정말 그럴까?> 결국 같은 이야기다. 사실 애초에 문제를 드러내기 위한 질문 아닌가. 그러니 이 질문에 유쾌해질리가 없다. 답답했다. 괜찮다고 생각하면 거짓말같아서 짜증이 났고, 괜찮지 않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사는게 억울해서 짜증이 났다. 생각하기 싫은데도 일정 주기로 비슷한 질문에 사로잡히는 스스로를 보면서…계속 읽기 “빙글빙글 도는 고민의 종착점은”

* 커버 이미지는 마르세유 굿마마 아래서 바라본 노을 보름간의 여행, 두 개의 국가, 여섯 개의 도시, 귀국 후 일주일의 휴식. 그렇게 거의 한 달을 쉬고 업무에 복귀했다. 나의 긴 휴가에 대해 알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같은 질문을 했다. ‘여행 어땠어요?’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질문만큼 그들의 표정 역시 기대감으로 가득한 것이 비슷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좋긴 했는데, 제가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요. 그래도 좋기는 진짜 좋았는데..’하며 말 끝을 흐렸다. 나의 소감이 상대방의 기대를 약간은 져버리는게 아닐까 하는 우려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보낸 시간이 여행이라서 혹은…계속 읽기 “프랑스&독일 여행 : 더 가까운 거리에 숭고함”

2018 안전가옥 겨울 스토리 공모전 원고 마감이 있은 후, 어김없이 1월엔 심사를 치뤘다. 심사 중 모든 심사단 운영멤버들이 입을 모아 칭찬한 작품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심사내내 어서 그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하지만 작품을 읽고 난 후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딱히 작품의 매력이나 재미포인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그 작품에서 특별한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최종 결심 회의에서 다른 운영멤버들에게 나는 솔직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모르겠다’고. 사람들은 어떤 걸 모르겠는지, 구체적인 생각과 근거를 물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게 무엇인지 조차 모르겠는 것이 나의…계속 읽기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는 방법”

그렇다. 모든 것은 결국 다 소멸한다. 북극의 빙하보다 모질지 못한 당신도, 나도, 대학도. 당신이 평생을 갈아 넣은 경력도. 당신의 인생을 대신해서 살아가는 자식들도. 소멸에는 어떤 예외도 없다. 어떤 존재를 지탱했던 조건이 사라지면 그 존재도 사라진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소멸의 여부가 아니라 소멸의 방식이다.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p.125 나는 사랑니가 네 개였고 단박에 네 개를 모두 뽑아버렸다. 의사 선생님은 이가 바르게 나서 굳이 뽑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모두 뽑아달라고 말했다. 필요 없는 것이, 그것도 네 개나 있다는 사실을…계속 읽기 “소멸의 세 번째 방식”

2018 한 해, 내 마음이 요동친 길을 그래프로 그릴 수 있다면? 아휴, 말도 말자. 골은 깊고 주기는 긴 묵직한 파도가 쉼없이 밀려오곤 했다. 파도는 해변에 닿는다고 깨지는 법이 없었다. 나는 그 물길 속에서 중심을 잡고 서있느라 자주 머리를 싸맸다. 연말이라고 서두른 적도 없는데, 타이밍 좋게도 나는 지금껏 내가 뿌린 고민의 답을 수확하며 12월을 보냈다. 덕분에 지난 한 달동안 ‘편안해’ ‘평화로워’ ‘안정적이야’ 하는 말을 달고 지냈다. 문제가 줄고 고민이 적고 생각이 드문, 대신 할 일만 많은 평화다. 요동이 거칠었던만큼 지금의 잠잠함이 나는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그래서 지금의…계속 읽기 “2018 문장들 : 일 년 회고”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다가 책을 한 권 샀다. 책의 제목은 <그녀에게 말하다>. 씨네21 김혜리 기자가 예술 분야에서 일종의 ‘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21명을 만나 나눈 대화를 모은 인터뷰집이다. 목차를 보고 읽고 싶은 부분만 훑어보던 중에 이창동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대목을 만났다. 김혜리 : 말을 바꾸어, 영화가 의미 있기 때문에 영화를 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이유를 불문하고 영화 만들기가 행복해서 영화를 하지만 거기 의미도 있다면 좋겠다고 소망하시는 건가요? 이창동 : 그 두 경우는 분명 다르죠. 하지만 따로 오는 것이 아니에요. 감독의 답변을 세 번 네 번 반복해서 읽었다. 그래,…계속 읽기 “덩어리는 덩어리로 보기”

주말마다 그림을 배우고 있다. 원기둥, 구, 육면체 같은 형태를 배우고 빛과 명암을 배운다. 색을 쓰는 방법을 익힌 후 사진을 따라 그린다. 취미인 만큼 각 단계를 속성으로 배우고는 있지만 밟아야 하는 단계는 고루 거치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간단하다. 대상을 선정하고, 보고, 그린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긴 훈련이 필요하다. 원하는 굵기로 선을 바르게 그리고 싶다면 손의 근육이 마음처럼 따라줄 때까지 선을 그어보아야 한다. 주어진 재료로 색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림 하나에 색을 과하게 칠해보고 결과를 확인하는 일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건…계속 읽기 “그림을 배우고 있다.”

가이드를 주지 않는 부모님 아래서 자랐다. 부모님은 언제나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너는 뭐든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해주는 존재였다. 못 한다고 꾸짖지도, 잘 한 일을 과하게 칭찬하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하게, 아주 묵묵하게 내 움직임을 지켜봤다. 그저 내가 도움이 필요하다 이야기하면 딱 필요한 만큼의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다시 나를 지켜봤다. 내준 만큼 기대할 법도 한데 그들은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물으면 또 다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잘 할 수 있다 믿는다고 말했다.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줄곧 그게 답답했다. 굳건히…계속 읽기 “인생 회의중 2. 할 수 있음의 함정에 빠지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