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강해지신 것 같아요.” 안전가옥에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쯤, 몇 년만에 만난 분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이 말을 듣고 저는 ‘파!’하고 최불암 웃음을 터트려버렸는데요. 우선 ‘강하다’라는 말을 들은 것이 난생 처음이었고, 그 말은 게임 캐릭터에나 어울리는 형용사 같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하지만 무엇보다 당황스러움이 컸던 것 같아요. 내가 강한 사람이라니. 늘 한결같이 쫄보인줄 알았는데.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자리에 앉은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듣게 된 ‘강해졌다’는 말이 저를 아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랩업은 저에게 먼 이야기 같았거든요.  그날 집에 돌아오면서 되짚어보았습니다. 지난 몇 년간…계속 읽기 “뭔가 강해지신 것 같아요”

저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이성’의 힘을 믿는 편입니다. 사실 감정과 이성이 서로 대치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 둘을 명확하게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래도, 결정적인 순간에 제가 발휘해야하는 것은 감정적인 반응이 아니라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해요. 저를 지금껏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 역시 그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 시간의 총합이라고 믿고 있고요.  고민이 생기면, 저는 과하게 재고 따지기를 반복하곤 합니다. 목표를 점검하고, 제가 가진 자원과 근거를 정리하고, 상황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기준을 정비하거나 새롭게 세우고, 모든 걸 그에…계속 읽기 “지친 건 아니고?”

“안전가옥에 작가들이 드나들게 하라.” 안전가옥에서 일을 해온 이래 가장 골몰해온 문장이다. 처음 문을 연 안전가옥에 들어서서 텅 빈 책장과 라이브러리를 마주했을 때, 그때부터 이곳을 가득 채운 작가들의 모습을 상상하고는 했다. 이를 위해 안 해 본 일이 있나. 물론 있겠지만 안 해본 고민은 없는 것 같다.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1. 한 번 방문하게 하는 것 2. 지속적으로 방문하게 만드는 것 3. 묶어두는 것. 이 세 가지를 가능하게 만드는 고민과 방법은 아주 다르다. 한 번 방문하게 하는 데에는 ‘혹하는 매력’이 필요하다. 예쁜 공간, 재밌는 행사…계속 읽기 “드나들게 하라”

Q. 이대로 괜찮은가? 나는 이 질문 앞에서 쉽게 작아지는 편이다. 자존감 문제인지 인지부조화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이 질문은 매번 다른 문장으로 머리에 떠오르곤 한다. 뭔가 부족해서 변화를 원할 때도, 모든 것이 완벽히 충족되어서 변화가 필요없을 것 같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대로 괜찮을까?> 혹은 <이대로 괜찮을 것 같은데 정말 그럴까?> 결국 같은 이야기다. 사실 애초에 문제를 드러내기 위한 질문 아닌가. 그러니 이 질문에 유쾌해질리가 없다. 답답했다. 괜찮다고 생각하면 거짓말같아서 짜증이 났고, 괜찮지 않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사는게 억울해서 짜증이 났다. 생각하기 싫은데도 일정 주기로 비슷한 질문에 사로잡히는 스스로를 보면서…계속 읽기 “빙글빙글 도는 고민의 종착점은”

* 커버 이미지는 마르세유 굿마마 아래서 바라본 노을 보름간의 여행, 두 개의 국가, 여섯 개의 도시, 귀국 후 일주일의 휴식. 그렇게 거의 한 달을 쉬고 업무에 복귀했다. 나의 긴 휴가에 대해 알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같은 질문을 했다. ‘여행 어땠어요?’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질문만큼 그들의 표정 역시 기대감으로 가득한 것이 비슷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좋긴 했는데, 제가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요. 그래도 좋기는 진짜 좋았는데..’하며 말 끝을 흐렸다. 나의 소감이 상대방의 기대를 약간은 져버리는게 아닐까 하는 우려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보낸 시간이 여행이라서 혹은…계속 읽기 “프랑스&독일 여행 : 더 가까운 거리에 숭고함”

2018 안전가옥 겨울 스토리 공모전 원고 마감이 있은 후, 어김없이 1월엔 심사를 치뤘다. 심사 중 모든 심사단 운영멤버들이 입을 모아 칭찬한 작품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심사내내 어서 그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하지만 작품을 읽고 난 후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딱히 작품의 매력이나 재미포인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그 작품에서 특별한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최종 결심 회의에서 다른 운영멤버들에게 나는 솔직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모르겠다’고. 사람들은 어떤 걸 모르겠는지, 구체적인 생각과 근거를 물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게 무엇인지 조차 모르겠는 것이 나의…계속 읽기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는 방법”

그렇다. 모든 것은 결국 다 소멸한다. 북극의 빙하보다 모질지 못한 당신도, 나도, 대학도. 당신이 평생을 갈아 넣은 경력도. 당신의 인생을 대신해서 살아가는 자식들도. 소멸에는 어떤 예외도 없다. 어떤 존재를 지탱했던 조건이 사라지면 그 존재도 사라진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소멸의 여부가 아니라 소멸의 방식이다.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p.125 나는 사랑니가 네 개였고 단박에 네 개를 모두 뽑아버렸다. 의사 선생님은 이가 바르게 나서 굳이 뽑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모두 뽑아달라고 말했다. 필요 없는 것이, 그것도 네 개나 있다는 사실을…계속 읽기 “소멸의 세 번째 방식”

2018 한 해, 내 마음이 요동친 길을 그래프로 그릴 수 있다면? 아휴, 말도 말자. 골은 깊고 주기는 긴 묵직한 파도가 쉼없이 밀려오곤 했다. 파도는 해변에 닿는다고 깨지는 법이 없었다. 나는 그 물길 속에서 중심을 잡고 서있느라 자주 머리를 싸맸다. 연말이라고 서두른 적도 없는데, 타이밍 좋게도 나는 지금껏 내가 뿌린 고민의 답을 수확하며 12월을 보냈다. 덕분에 지난 한 달동안 ‘편안해’ ‘평화로워’ ‘안정적이야’ 하는 말을 달고 지냈다. 문제가 줄고 고민이 적고 생각이 드문, 대신 할 일만 많은 평화다. 요동이 거칠었던만큼 지금의 잠잠함이 나는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그래서 지금의…계속 읽기 “2018 문장들 : 일 년 회고”